뜨개질하는 여자 / 김수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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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40회 작성일 24-04-05 17:04본문
뜨개질하는 여자
김수열
태백에 가면
다시 볼 수 있을까
검은 하늘 검은 땅이 싫어 떠날 사람 모두 떠나고
배운 것이라고는 갱차 타고 막장 가는 일 뿐
떠나봐야 막장인생 아니겠냐며 눌러앉은 광부들에게
그리움도 팔고 뜨거움도 파는 대밭촌 한 구석
자정 훨씬 넘은 시간
더러는 문을 닫아 적막한데
삼십 촉 전구 아슴한 진열장에 앉아
두터운 파카 어깨에 걸치고 뜨개질하는 여자
길거리엔 바람 그리고 눈발
아무리 둘러봐도 어둠뿐인데
누구를 기다리는 것일까
막장생활 반 년이면 남자구실도 제대로 못한다는데
하룻밤 스쳐간 그 사람을 위해
얽히고 설킨 실타래를 밤새껏 풀고 있는 것일까
대바늘 한 코 한 코에 털실 감아 꿰듯
다시는 오지 못할 사랑을 엮고 있는 것일까
뜨거워지기엔 이미 낡은 나이
언뜻 스쳐간 사랑만은 그래도 놓칠 수 없어
찾는 이 없는 대밭촌 구석에 앉아
검은 하늘 검은 땅 하얗게 밝히는
아,
태백에 가면 다시 볼 수 있을까
―김수열 시집, 『바람의 목례』 (애지, 2006)
1959년 제주 출생
제주대학교 국어교육과 졸업
1982년 《실천문학》 등단
시집 『바람의 목례』 『어디에 선들 어떠랴』 『생각을 훔치다』 『빙의』
『물에서 온 편지』 등
산문집 『섯마파람 부는 날이면』 등
제4회 오장환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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