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차를 마시다 / 김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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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70회 작성일 24-04-19 09:22본문
꽃차를 마시다
김광기
꽃의 절정을 꺾어 말리고 덖고 우려
입이 데일까 싶어 입안이 뜨거울까 싶어
혹시는 꽃의 화기에 몸이 데지는 않을까 싶어
후후 불면서 차를 마신다.
꽃차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과 함께 있는 시간을 마시고 있다.
가끔씩 꽃차의 효능에 대해 듣고 있을 때는
채 발화하지 못한 일그러진 꽃의 형상을 보기도 한다.
하지만 형상 너머의 것을 보는 듯
더 아름답게 환생한 꽃을 내어놓듯
제 몸을 우려 내어준 꽃에 경배하듯
이렇게 귀한 시간에
그렇게 구하기 어렵다는 차를 대접하며
당신은 누누이 꽃차에 대해 말하고 있다.
나는 지금 당신의 환한 모습이 꽃차보다
그 이전의 꽃보다 더 아름다울 것 같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나는 따라주는 대로 얼른 꽃차를 비우지만
당신은 고상하고 품위 있게 차를 마시고 있다.
꽃차의 의미보다 솔솔 피우는 꽃차향보다
차를 마시고 있는 그 모습에 취한다.
꽃을 거두면서 꽃잎을 말리고 덖고
오늘 이 시간을 위해 하나하나 담아두면서
무수히 꽃과 마음을 나누었을
당신의 지난 시간은 더 아름다웠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어떤 꽃의 소멸은
이 시간의 기슭에서 만난
우리 만남을 더 삶답게 우려내고 있다.
―김광기 시집, 『풍경』 (문학과 사람, 2024)
1959년 충남 부여 출생
동국대 대학원 문창과 석사, 아주대 대학원 국문학과 박사과정 수료
1995년 시집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를 내고 《월간문학》과 《다층》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호두껍질』 『데칼코마니』 『시계 이빨』 『풍경』 등
저서 『존재와 시간의 메타포』 『글쓰기 전략과 논술』 등
1998년 수원예술대상 및 2011년 한국시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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