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버스 정류장 / 유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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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49회 작성일 24-04-26 14:19본문
어쩌다 버스 정류장
유현아
간판을 수시로 바꿔 달던 상가의 지붕들은 불빛 대신 달빛을 머금고
꼬리가 뭉툭한 단골 고양이는 일정한 시간에 만나던 손을 찾아 두리번거리고
머리카락 휘날리며 달리던 오토바이 배달 소년은 어딘가로 사라지고
조는 날이 더 많던 갈빗집 사장님은 유리문에 x를 끊임없이 긋고 있는
아파트 그림자는 거대한 괴물의 식탐처럼 낮은 지붕의 가게들을 집어삼키고
공가 딱지가 붙은 가게의 벽들은 날개를 펼치며 기하급수적으로 복제되고 있다
나의 단골 가게들이 하나둘 서서히 땅속으로 꺼지고 있다
어둠이 각질처럼 켜켜이 쌓여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낯선 동네의 이방인처럼 버스를 기다린다
사라진 동네의 버스 정류장은 어정쩡하게 흔들리고
익숙한 손을 기다리던 고양이는 터덜터덜 어둠을 횡단하고 있다
오랫동안 다정했던 동네가 그곳에 있었다
―유현아 시집, 『슬픔은 겨우 손톱만큼의 조각』 (창비, 2023)
2006년 제15회 전태일문학상 수상
시집으로 『아무나 회사원, 그밖에 여러분』 『주눅이 사라지는 방법』
『슬픔은 겨우 손톱만큼의 조각』
미술에세이 『여기에 있었지』 등
제21회 아름다운작가상 수상
제4회 조영관 문학창작기금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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