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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주의자 / 김수우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784회 작성일 24-05-02 10:07

본문

뿌리주의자

 

   김수우

 

내 방 안에 하나의 방이 있다

참외 장수였던 영혼이 참외를 노랗게 쌓아 올린다

한칸 더 들어가면

우주로 나가는 녹슨 문고리가 보인다

엉겅퀴, 아픈, 아프게 붉은

내 사랑을 시적 장치로 삼지 않고

변명과 핑계를 암탉처럼 기르지 않고

합리를 사악한 현금처럼 뿌리지 말고

내 절망을 온실에서 키운 튤립으로 팔지 말고

그저 그대로 죽자

늙은 쥐가 오래된 도시에 알뜰하듯

노동, 고무대야 상춧잎같이 무심한

성실, 거친 우연에 찌글찌글 몸을 푸는

안개, 플라스틱을 삼킨 앨버트로스를 어떤 것에도 비유하지 말자

말자,

말자

방은 수직도 수평도 아닌 최초의 연민

병든 혁명과 싸우는 데 어떤 이론도 소용없고

찌든 냄비를 닦는 데 낯선 방정식은 필요 없고

소금기 많은 눈물을 기억하는 데 값싼 모방은 독초이니

삶은 어금니와 송곳니로 마시는 맹물이니

내 방 밖 또 하나의 방이 있다

그릇 장수였던 영혼이 유리그릇을 높다랗게 쌓고 있다

백년 내내 꿈속에서 길을 잃는 카프카처럼

한번도 죽은 적 없는 빗방울처럼

엉겅퀴, 뻔뻔한, 뻔뻔하게 붉은

ㅡ계간 시와 사상2023년 겨울호



김수우.jpg


1959년 부산 출생

경희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과 졸업

1995년 시와시학》 등단

시집으로 길의길』 『당신의 옹이에 옷을 건다

젯밥과 화분』 『붉은 사하라』 『몰락경전

산문집 쿠바춤추는 악어』 『유쾌한 달팽이』 『참죽나무 서랍

스미다』 


추천2

댓글목록

조이킴포에리나김은주님의 댓글

profile_image 조이킴포에리나김은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내 방 안에 방
내 방 밖의 방
그리고 나...
무엇이 진짜인걸까.

엉켜있는 나를 잠시 더듬어봅니다
둘다
아니, 셋다 모두 나인것을.

귀한시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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