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이 있는 집 / 백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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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4,100회 작성일 16-03-02 09:46본문
마당이 있는 집
백무산
마당이 있는 집에 들어서면서
저녁이 왔네,라고 나는 말했다
다른 때 같으면
다른 곳 같으면
해가 저물었구나,라고 말했을 것이다
저녁은 쓰러지는 한때가 아니라
서서히 물들어 저녁이 태어나고
저녁이 어둠속으로 천천히 걸어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낙화는 거두어들임의 한때가 아니라
낙화라는 특이의 피어남이 있는 것을 보았다
많은 것을 내려놓아 환해지는 한때를 놓아둘 곳이
마당 같은 곳일까
문밖이 곧장 길이래서야
마음 밖이 곧장 타인이래서야
가난이 절벽이 되어서야
어스름이 담길 곳이 없네
마음 밖에 가난한 마당 하나 있어야겠다
그곳에서 어스름이 완성되면 어둠으로만 가야 하는 건 아니지
봄꽃들 지고 여름을 맞이하듯이
한낮으로 들어가기도 하는 것이다
어스름의 꽃을 피우는 것이다
1954년 경북 영천 출생
1984년 「민중시」 1집에 '지옥선' 등을 발표하면서 등단
이상문학상, 만해문학상 수상
시집 『만국의 노동자여』 『동트는 미포만의 새벽을 딛고』 『초심 』 『길밖의 길』 『거대한 일상』
『폐허를 인양하다』 등
댓글목록
맛이깊으면멋님의 댓글
맛이깊으면멋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저녁이 어스름으로 완성되는 낙화가 환하게 피어나게 해 주는 마당
따뜻한 시다.
집에 들어서며 해가 졌다고 하는 게 아닌 저녁이 왔네라 하게 되는 마당이 있는 집.
저녁은 서서히 물들어 가는 거고, 그 저녁이 어둠 속으로 서서히 걸어가는, 어스름이라는 것이 완성되는 곳도, 낙화는 거두어들임이 아니라 피어나는 한때이고, 많은 것을 내려놓아 환해지는 한때를 놓아두는 곳이라는 것도 마당임을 알게 된다.
문밖이 곧장 길과 맏닿아 집과 집이 아닌 곳으로 일순간에 전혀 딴 판으로 바뀌어 버리는, 극명하며 단호한 이분법 만으로 구분 지어지게 만드는 공간은, 각박함으로 숨이 가빠지고, 단호함으로 차디차다.
단절과 단절 사이에 마당이라는 점이 지역을 놓아줌으로써 안정과 여유를 가질수 있다면, 이를 통해 전혀 통하지 않을 서로를 따스하게 이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욕심껏 하늘을 들여다 놓을 마당 있는 집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마음 밖, 가난한 마당이라도 하나 놓아두어야겠다.
2020.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