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음 / 김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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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534회 작성일 24-05-16 10:56본문
잊음
김 륭
그녀는 생선과 단 둘이 남았다*
나는 이런 문장이 참 마음에 든다 사방이 쥐죽은 듯
고요해지고 기다렸다는 듯 난간이 생긴다
나는 누워있고, 그녀는 생선과 함께 난간 끝에
위태롭게 서있다
그러나 어떤 고요는 말이 아니라 살이어서 그녀는
생선과 모종의 이야기를 길게 나눌 수도 있다
나는 그녀의 몸에서 비릿하게 흘러나오는
고백의 냄새를 맡는다
그녀가 울고 있다 가라앉고 있다
그녀의 생선을 둘러싸고 있던 모든 사물들이
물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녀는 무사히
가라앉을 수 있을까
어쩌면 그녀는 자신이 생선을 낳았다고 생각하는지
모른다 나는 석쇠 위의 생선처럼 몸을 뒤틀며
마음을 일으켜 세운다
그녀가 메기나 미꾸라지처럼 좀 기분 나쁘게 생긴
어떤 남자가 아니라 생선과 단 둘이 남았다는
이런 이야기가 나는 정말
마음에 든다
그러니까 한 마리 혹은
두 마리, 세 마리, 여러 마리 생선처럼
내 속 깊은 곳으로 들어와 살아서
잊힌 그런 연인이 내게도
분명 있었다
*리디아 데이비스, 『불안의 변이』 P.61 「생선」 중에서
―계간 《시와 편견》 2024년 봄호
2007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2007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
시집 『살구나무에 살구비누 열리고』 『원숭이의 원숭이』
동시집 『프라이팬을 타고 가는 도둑고양이』
『삐뽀삐뽀 눈물이 달려온다』 『별에 다녀오겠습니다』
『엄마의 법칙』 등
2013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수혜
2005년 김달진지역문학상, 월하지역문학상 2012년 제1회 박재삼사천문학상
제2회 문학동네 동시문학상 대상 제9회 지리산문학상
제10회 사계 김장생 문학상 운문부문 대상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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