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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 이병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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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495회 작성일 24-05-30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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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이병초


 
어스름 깔리는 시냇가에 앉아
내 귓속 파먹는 새소리에
성냥불 켜 주며 잠시
환해졌다가 캄캄해지는 순간을 즐겼다
 
물병아리 두엇이 시냇물 속에
고개 처박을 때마다 눈 뜨는 잔물결들을
밤의 여객선이 찍어내는 판화라고 믿었던 날은
얼마나 멀리 가 버렸나 생각하며
성냥개비를 또옥똑 분지르곤 했다
 
고이 접히지도 않고
돌돌돌 펴지지도 않는 어제를 매달고
망명객처럼 떠돌았어도
시간의 눈금을 지우기는커녕
소금 한 됫박 못 얻고
바람 속에서 잠을 청했던 삼십여 년이
누구의 꿈속은 아니었을까……
 
물결이 반짝일수록
더 맑아지는 새소리
머릿속을 일직선으로 빠져나가는 새소리에
성냥불 켜 주며
몸을 가만히 기댔다
 
 ―이병초 시집, 이별이 더 많이 적힌다』 (걷는 사람, 2024)

 


  

1963년 전주 출생

1998년 시안으로 등단

시집 밤비』 『살구꽃 피고』 『까치독사』 『이별이 더 많이 적힌다

시 비평집 우연히 마주친 한 편의 시역사소설 노량의 바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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