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평 / 유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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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평
유수연
조금 얻어 올 수 있었다
전부를 걸어 얻을 것은 좀 더 넓어진 의미의 전부였기에
내가 걸었던 것도 그것뿐이었다
국수를 삶는 어머니
국수를 삶는 냄비가 바글바글 끓는 저녁이다
검지를 엄지에 이렇게 동그랗게 말면 한 사람이고
좀 더 크게 동그랗게 말면 두 사람도 넉넉히 먹일 수 있다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서로의 손을 잡고
더 넓은 원을 만들고
가운데로 모이며 좀 더 작은 원을 만들어낸다
커졌다가
작아지는
놀란 눈동자를 본 적이 있다, 내가 본 도형 중
가장 슬픈 정수리였다
일의 뒤에 줄을 세우면 숫자가 커졌고 커지다 못해 감당할 수 없었다
영의 뒤에 줄을 세우자 아무 의미도 없었다
다 먹을 수 없을 양도 먹다 보면 다 먹을 수 있다
그런 양을 다 해치우다보면
못 이룬 꿈보다 가끔 못 먹은 밥이 생각날 수도 있겠다는 네 말이 생각난다
그 미련이 가끔 웃기는 저녁이다
분명 누가 굴러떨어지고 깔아뭉개지고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로
데굴데굴 무릎을 안고 있는데
엄마, 배고파요
그게 유언인 삶도 있는 저녁인데
부러진 소면은 배수구에 흘려보내며 아주 가는 분노를 생각한다
다들 걸러져 접시에 올리는 일 인분을 가졌고
다들 저녁 다음에는 아침이 있었다
―유수연 시집, 『기분은 노크하지 않는다』 (창비, 2023)

1994년 강원도 춘천 출생
201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
시집 『기분은 노크하지 않는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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