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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 이초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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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907회 작성일 16-03-08 10:42

본문

 

사과

 

  이초우

 

 

해지는 시간 그가 왜 동쪽을 바라보고 있을까요

그의 정수리 위에 떠 있는, 샛노랗게 익어가는 달 같은

사과 하나

그가 살아온 사과 어디 티 하나 없는,

50 나이 눈앞에 둔 그런 사과였지요

그의 시선 가 있는 동쪽 산 능선에도

붉은 노을빛 사과 볼 대신 노랗게 물들어가는 생각들

투명 물속처럼 어슴프레 잠겨 있습니다

어제 그저께였지요 이제 서너 달 뒤면

지천명이 돼 버릴 산기슭을 내려올 때였지요

여기저기 울어대는 귀뚜라미 소리에

그도 그만 울컥 시큰거리고 말았지요

한 그루의 나무에 수백도 달리는 사과들

언제 한번 검은 반점에 시달린 적 없고

낙과를 우려해본 일 없는 그, 그러나 그의 갈 길

낙조에 물든 저 먼 발치의 동쪽 산허리처럼 흐릿하게

긴 꼬리 얄랑이며 구물거리고 있습니다

푸른 색조 야금야금 밀어내고

비록 그의 얼굴 당도 높은 자줏빛으로 물들어가겠지만

그 사과 결국 혼자 떠 있고, 지금 그도

나에게 등 돌리고 정장 차림으로

한참 동안 저렇게 골똘히, 혼자 서 있지 않는가요

 

 

 

경남 합천 출생
부경대 해양생산시스템공학과 졸업
2004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1818년 9월의 헤겔 선생』『웜홀 여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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