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 이초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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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905회 작성일 16-03-08 10:42본문
사과
이초우
해지는 시간 그가 왜 동쪽을 바라보고 있을까요
그의 정수리 위에 떠 있는, 샛노랗게 익어가는 달 같은
사과 하나
그가 살아온 사과 어디 티 하나 없는,
50 나이 눈앞에 둔 그런 사과였지요
그의 시선 가 있는 동쪽 산 능선에도
붉은 노을빛 사과 볼 대신 노랗게 물들어가는 생각들
투명 물속처럼 어슴프레 잠겨 있습니다
어제 그저께였지요 이제 서너 달 뒤면
지천명이 돼 버릴 산기슭을 내려올 때였지요
여기저기 울어대는 귀뚜라미 소리에
그도 그만 울컥 시큰거리고 말았지요
한 그루의 나무에 수백도 달리는 사과들
언제 한번 검은 반점에 시달린 적 없고
낙과를 우려해본 일 없는 그, 그러나 그의 갈 길
낙조에 물든 저 먼 발치의 동쪽 산허리처럼 흐릿하게
긴 꼬리 얄랑이며 구물거리고 있습니다
푸른 색조 야금야금 밀어내고
비록 그의 얼굴 당도 높은 자줏빛으로 물들어가겠지만
그 사과 결국 혼자 떠 있고, 지금 그도
나에게 등 돌리고 정장 차림으로
한참 동안 저렇게 골똘히, 혼자 서 있지 않는가요
경남 합천 출생
부경대 해양생산시스템공학과 졸업
2004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1818년 9월의 헤겔 선생』『웜홀 여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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