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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날 / 이병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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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074회 작성일 24-10-03 20:34

본문

을날


   이병률

 

이사를 한다

나도 모르는 이사를 하고

싼 적 없는 이삿짐을 푼다

 

언제부턴가 그리 되었다

 

마음에서 마음으로의 이사

명치께에서 명치 끝으로의 이사

생각에서 생각으로의 이사

이상하게 그때는 항상 가을이었다

 

그 가을이었다

낯선 곳에다 짐을 내려놓고는

잠깐 자려고 눈을 붙였다가 떴는데

창문 바깥 해바라기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어서 놀랐다

 

벌써 저녁이 넘어가고 있었다

우연히 마주친 것이 아니라

정말로 해바라기가 잠든 나를 불쌍하다는 듯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거나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찾기 위해 일어나 앉아서는

조금 걸어야 한다고 마음으로만 생각했다

 

해는 없고 해바라기만 떠 있었다

마음에 파고들어와 아프게 드나드는 그 감정이 하도 쓰르르해서

나는 나를 건드려 발기시켰다

이병률 시집, 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문학동네, 2020)



  


1967년 충북 제천 출생
서울예전 문창과 졸업/파리 영화학교 ESEC 수료
199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 『바람의 사생활』 『찬란』

『눈사람 여관』 『바다는 잘 있습니다』 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

산문집 『끌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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