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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증기 극장에 앉아 / 길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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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36회 작성일 25-04-18 17:53

본문

장에 앉아

 

     길상호

 

 

 

잠시만 머물다 가겠습니다

 

거울 사이에서 빚어 온 비극들이 또르륵

중력을 잃고 흘러내릴 때,

 

얼굴을 연기하던 배우와

이름을 연출하던 감독의

계약은 끝이 납니다

 

조용히 끓는 봄

뭉게뭉게 피어나 사라지는 구름

 

당신이 믿는 세계는

바닥 터진 물방울

 

머지않아 기도는 쓸모없는 얼룩으로 남을 겁니다

 

출렁이는 발성법을 오래 배워 왔지만

뿌옇게 번지다 멎는 호흡도 익혀 왔지만

 

주어지는 배역은 늘 말 없는 사람

 

한눈을 파는 사이

물방울 주머니에 넣어 매달아 둔 목숨을

 

누군가 따뜻한 손바닥으로 닦아 냅니다

 

당신의 마지막이 궁금하지만

더는 기다릴 수 없습니다

 

이번 봄에는 유독

모르는 이름의 부고 문자가 많습니다

 


 ―길상호 시집, 왔다갔다 두 개의』 (시인의 일요일, 2024)



 

kilsh.jpg


 1973년 충남 논산 출생
한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200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오동나무안에 잠들다』 『모르는척』 『눈의 심장을 받았네』

오늘의 이야기는 끝이 났어요 내일의 이야기는 내일 하기로 해요』 

 왔다갔다 두 개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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