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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아이스 / 김이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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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52회 작성일 25-06-05 14:24

본문

블랙 아이스

 

    김이듬

 

눈발은 눈이었을 때 아름답다

쌓인 눈이 눈석임물 되었다가 얼어붙으면 가장 위험하다


눈이 그쳤는지 창밖으로 손을 내밀어 본다

설원이 녹고 있다

도로와 개펄이 드러난다

항구 기능을 상실한 저 월곶 포구에는 아침 어시장이 열릴 것이다


아침, , 엄마

에밀리가 좋아하는 단어들을 나도 좋아한다


엄마 빼고는 여기 다 있다

에밀리는 기지개 켜다 말고 베개를 껴안으며

말한다


"오늘은 찾을 수 있겠지?

나랑 닮았겠지?

죽진 않았겠지?"


이 친구는 포틀랜드에서 입양 기록 갖고

엄마 찾으러 한국에 왔다

어제는 에밀리가 내민 지번 주소 들고 그의 부모 댁을 찾아갔지만

삼미시장으로 변한 거리만 확인했을 뿐

우리는 40여 년 전의 시간을 찾을 수 없었다

난생처음 한국에 온 에밀리와 난생처음 시흥에 온 나는

을씨년스러운 시내를 온종일 돌아다녔다


폭설이 쏟아지기 시작한 건 마전저수지 사거리에서

에밀리가 양팔을 벌린 채 돌다가 웃다가 넘어진 건 해가 질 무렵


"히죽거리며 말하지 마, 에밀리!"

"그럼 울어야 되겠어?"


뜨거운 물에 빨아 널어 둔 장갑은 수축되어 작고

어제 입었던 스웨터는 여태 축축하다

작년에 룸메이트가 던진 말이 떠오른다

실수로 놓고 가는 줄 알고 챙겨 준 물건들이었다

버리기는 그렇고…… 너 가져

갖기 싫으면 버려 줘


사람 마음만큼 잘 변하는 게 있을까

희고 부드러운 눈발 같았다가 녹으면서 성질이 변한다

철이 들어 나의 엄마를 찾아갔을 때

엄마는 새엄마보다 낯선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아니면 원래 그런 사람이었을까

딸을 버리고도 그리움이나 죄책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차갑고 미끄러운 길이 펼쳐져 있다

"눈이 그쳐서 더 추울 거야

장갑도 껴

눈길보다 살얼음판이 더 위험해"

에밀리가 태어난 곳을 향해 간다

생후 8개월 동안 살았던 곳을 향해 춤을 추듯 걷는다

어딘지도 모르면서


모텔 주차장에서 나오던 검은 승용차가

반 바퀴 돌며 도로를 벗어난다


누구였는지 알 수 있을까

왜 그랬는지 물어봐서 뭐 할까


범인을 잡는 데 회의적인 소설 속 형사는 이해가 되지만

회의적인 가이드이자 친구로서의 나는 우리의 행방을 모르겠다


실제로 가긴 간다 미끄럽고 거무스레한 길로


태어나려면 거쳐야 하는 통로 같다

만나봐야 좋을 게 없을지라도

한 번 더 버려질지 모르지만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까마득히 모를 곳으로


김이듬 시집, 누구나 밤엔 명작을 쓰잖아요(타이피스트, 2024)

   제2회 가히문학상 수상 시집


  

 

2001년 계간 포에지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으로 별 모양의 얼룩』 『명랑하라 팜 파탈』 『말할 수 없는 애인

베를린달렘의 노래』 『히스테리아』 『표류하는 흑발』 『마르지 않은 티셔츠를 입고 

투명한 것과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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