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름이 좋다 / 이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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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름이 좋다
이재무
1
나는 여름이 좋다
옷 벗어 마음껏 살 드러내는,
거리에 소음이 번지는 것이 좋고
제멋대로 자라대는 사물들,
깊어진 강물이 우렁우렁 소리 내어 흐르는 것과
한밤중 계곡의 무명에 신이 엎지른 별빛들 쏟아져 내려
화폭처럼 수놓은 문장 보기 좋아라
천둥 번개 치는 날 하늘과 땅이 만나 한통속이 되고
몸도 마음도 솔직해져 얼마간의 관음이 허용되는
여름엔 절제를 모르는 아이와 같이
나를 마구 들키고 싶고 내 안쪽 고이 숨겨 온 비밀
몰래 누설하고 싶어라
나는 여름이 좋다
2
나는 시끄러운 여름이 좋다
여름은 소음의 어머니
우후죽순 태어나는 소음의 천국
소음은 사물들의 모국어
백가쟁명 하는 소음의 각축장
하늘의 플러그가 땅에 꽂히면
지상은 다산의 불꽃이 번쩍인다
여름은 동사의 계절
뻗고, 자라고, 흐르고, 번지고, 솟는다
―이재무 시집, 『즐거운 소란』 (천년의 시작, 2022)
1958년 충남 부여 출생
한남대 국문과, 동국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1983년 무크지 《삶의 문학》 등단
시집으로 『섣달 그믐』 『몸에 피는 꽃』 『시간의 그물』 『위대한 식사』
『푸른 고집』 『누군가 나를 울고 있다면』 『주름 속의 나를 기다린다』
『온다던 사람 오지 않고』 『경쾌한 유랑』 『저녁 6시』 『길 위의 식사』
『슬픔에게 무릎을 꿇다』 『슬픔은 어깨로 운다』 등
산문집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 『생의 변방에서』 『집착으로부터의 도피』 등
난고문학상, 편운문학상, 소월시문학상, 풀꽃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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