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직유 / 진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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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직유
진은영
지나가는 곳은 매번 달랐지만
양옆으로 붙은 두 개의 녹색 기차 좌석처럼 우리 둘은 붙어 다녔잖아
펼처진 책의 좌우 페이지처럼 의견은 달랐지만 늘 같이 있었잖아
흰 비행기에서 동시에 불을 뿜는 두 개의 엔진처럼 같은 일들에 분노했잖아
우리는 오전과 오후처럼 완벽한 하루였잖아
하나의 옷에 달린 단춧구멍과 단추처럼 우린 다른 모양이지만 이어지고,
꼭 맞는 열쇠 구멍에서 열쇠가 돌아가는 소리처럼 유쾌했었잖아
어디로 향하는 문인지로 모르면서ㅡ
어디서 떨어진 단추인지 잊어버렸잖아, 문이 열리자 너는 가 버렸잖아
백합은 꽃,
기린은 동물,
오렌지는 과일, 에펠은 탑이고
죽음은 잠긴 문, 단 한번 열리는
영화 속에선 헤어진 연인이 반지를 멀리 강물을 향해 던지잖아
약속은 더 먼 곳으로 던져질 뿐 깨지는 것은 아니라서,
심해로 흘러가 물고기의 뱃속에서 빛나면서도
반지는 기다렸잖아, 우리의 약속이 지켜지기를
―《문장 웹진》 2025년 4월호
1970년 대전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와 같은 과 대학원 졸업
2000년 《문학과사회》 봄호로 등단
시집으로『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우리는 매일매일』『훔쳐가는 노래』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등
그 밖에 『순수이성비판, 이성을 법정에 세우다』 『니체, 영원회귀로와 차이의 철학』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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