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일기 / 문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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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일기
문성해
한전에 근무하는 지인에게 주부검침원 자리를 부탁하려고 이력서를 들고 간다 그래도 바짝 하면 월 백이십에 공휴일은 쉬니 그만한 일자리도 없다 싶어 용기를 낸 길, 벌써 봄이라고 이 땅에 뿌리를 박는 민들레 제비꽃 들, 그 조그맣고 기대에 찬 얼굴에 대고 조만간 잔디에 밀려나갈 것이라고 나는 말해줄 수 없다 그에 비하면 밀려날 걱정 없이 남의 뒤란에 걸린 계량기나 들여다보면서 늙는 것도 괜찮다 싶다가도 그래도 뭔가 좀 억울하고 섭섭해지는 기분에 설운 방게처럼 옆걸음질 치는데 명동성당 앞에는 엊그제 돌아가신 추기경님 추모 행렬이 끝도 없이 늘어서 있다 대통령 앞에서도 할 말 다했다는 추기경님도 이 땅에서는 임시직이셨나, 그나저나 취업이 되더라도 일이년은 기다려야 한다는데 그동안은 앳된 얼굴의 저 민들레처럼 저 제비꽃처럼 내일 따윈 안중에도 없이 팔락거려도 될까
경북 문경 출생
영남대 국문과 졸업
1998년 <대구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200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 『자라 』『 아주친근한 소용돌이』『입술을 건너간 이름』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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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이깊으면멋님의 댓글

주부검침원 자리를 부탁하러 가는 길에 뿌리를 내리는 민들레, 제비꽃을 보았다.
조그맣고 기대애 찬 민들레와 제비꽃에게 조만간 잔디에 밀려나갈 거라는 사실을 말해줄 수 없다.
밀려날 걱정은 없지만,
그다지 성에 차지 않는 검침원 자리지만, 취업 되더라도 일이년을 기다려야 한다는데 저 민들레와 제비꽃처럼 아무 것도 모르는 양 즐거워해도 되는 건가?
김수환 추기경조차도 이 땅에서는 임시직이셨나라는 유머에 그만 피식 웃음이 나오고야 말았다.
현실은 어렵고 힘들어도, 이런 유머로 웃음을 만드는 여유가 좋다.
2019.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