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일기 / 문성해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4,493회 작성일 15-07-20 08:41본문
취업일기
문성해
한전에 근무하는 지인에게 주부검침원 자리를 부탁하려고 이력서를 들고 간다 그래도 바짝 하면 월 백이십에 공휴일은 쉬니 그만한 일자리도 없다 싶어 용기를 낸 길, 벌써 봄이라고 이 땅에 뿌리를 박는 민들레 제비꽃 들, 그 조그맣고 기대에 찬 얼굴에 대고 조만간 잔디에 밀려나갈 것이라고 나는 말해줄 수 없다 그에 비하면 밀려날 걱정 없이 남의 뒤란에 걸린 계량기나 들여다보면서 늙는 것도 괜찮다 싶다가도 그래도 뭔가 좀 억울하고 섭섭해지는 기분에 설운 방게처럼 옆걸음질 치는데 명동성당 앞에는 엊그제 돌아가신 추기경님 추모 행렬이 끝도 없이 늘어서 있다 대통령 앞에서도 할 말 다했다는 추기경님도 이 땅에서는 임시직이셨나, 그나저나 취업이 되더라도 일이년은 기다려야 한다는데 그동안은 앳된 얼굴의 저 민들레처럼 저 제비꽃처럼 내일 따윈 안중에도 없이 팔락거려도 될까
경북 문경 출생
영남대 국문과 졸업
1998년 <대구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200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 『자라 』『 아주친근한 소용돌이』『입술을 건너간 이름』등
댓글목록
맛이깊으면멋님의 댓글
맛이깊으면멋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주부검침원 자리를 부탁하러 가는 길에 뿌리를 내리는 민들레, 제비꽃을 보았다.
조그맣고 기대애 찬 민들레와 제비꽃에게 조만간 잔디에 밀려나갈 거라는 사실을 말해줄 수 없다.
밀려날 걱정은 없지만,
그다지 성에 차지 않는 검침원 자리지만, 취업 되더라도 일이년을 기다려야 한다는데 저 민들레와 제비꽃처럼 아무 것도 모르는 양 즐거워해도 되는 건가?
김수환 추기경조차도 이 땅에서는 임시직이셨나라는 유머에 그만 피식 웃음이 나오고야 말았다.
현실은 어렵고 힘들어도, 이런 유머로 웃음을 만드는 여유가 좋다.
2019.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