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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노테 / 이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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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4,207회 작성일 15-07-21 12:56

본문

 

세노테 

 

     이혜미

 

   입을 벌리자 천장이 낮아졌어. 물줄기들이 일제히 솟구치고 바닥엔 빛나는 터널이 생겼지. 어디로 사라졌을까, 흐리고 불분명한 것들이 수면을 메웠어.

 

   달의 표면을 손으로 쓸다가 어지러운 꽃 속을 들여다보면 두렵고 빼곡한 몸의 중심, 하나의 점을 향해 모아지는 남겨진 빛들 속이었어. 물의 천장을 뚫고 중심 없는 바닥으로 나아가는 흰 화살들.

 

   그걸 날개라 불러도 좋을까. 추락하는 도중에 급히 쓴 편지들, 찢어진 봉투의 안쪽, 시간은 끝없는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인사는 가장 어두운 뒷모습 속에 있었지. 그걸 녹아내리는 잎사귀들이라 불러도 좋을까. 어둠을 반사하는 구멍들이라 불러도 좋을까.

 

   파쇄기 속에 희고 길게 누워 다른 빛을 기다릴 때, 몸을 통과하여 흐르는 물줄기를 느꼈어. 달을 향해 흐르는 강이었고 뒤집혀 환해진 구멍 속이었지.

 

 

 

안양 출생
2006년 중앙신인문학상 당선
2009년 서울문화재단 문예창작기금 수혜
시집으로『보라의 바깥』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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