짚을 만졌던 느낌 / 유홍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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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126회 작성일 16-04-15 09:37본문
짚을 만졌던 느낌
유홍준
짚을 만졌던 느낌은
뱀을 만졌던 느낌과는 달라서
차갑지가 않지 매끄럽지가 않지 꺼끌꺼끌하고 까칠까칠하지
나를 낳고 동생을 낳고
아버지 대문간에 금줄을 칠 때, 그 새끼를 꼬든 느낌은 어떠했을까
낫으로 발바닥을 깎아도
꿈쩍도 않던 소는, 달구지를 끌던 옛날 옛적 소는
짚으로 만든 그 신발을 신었을 때 감촉이 또 어떠했을까
짚을 만졌던 느낌은
옷이나 책이나 그릇을 만졌던 느낌과는 달라서 한참을 달라서
옜다, 너도 한번 꼬아보아라
아직 어린 나에게도 짚 한 단이 던져졌을 때
특별히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나의 손바닥은 그것을 싹싹 비벼 꼬았네
요만큼 새끼줄을 꼬면
꼬리처럼 엉덩이 뒤로 밀어내며
동그랗게 사리던 새끼줄의 즐거움을 알았다네
짚을 만졌던 느낌은
여자의 몸을 만졌던 느낌과는 달라서
꺼끌꺼끌하고 까칠까칠하고 나는 아직도 그 느낌을 좋아한다네
자주 밤길을 오갔던 나는
짚단에 불을 붙이면 어느 만큼 갈 수 있는지 그것까지를 다 알고 있다네
겉은 꺼끌꺼끌하고 까칠까칠한 짚의 느낌을
속불은 발갛고 재는 유난히 더 검은 짚의 육체를
1962년 경남 산청 출생
1998년 ≪시와 반시≫로 등단
2005년 제1회 젊은 시인상 수상
2009년 제1회 시작 문학상 수상
28회 소월시문학상 수상
시집 『상가에 모인 구두들』 『나는 웃는다』 『저녁의 슬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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