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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푼첼의 방 / 김경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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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225회 작성일 16-04-28 12:11

본문

 

라푼첼의

 

   김경인

 

 

긴 치마 그림자 너울지는 방

목 없는 화병이 꽃 그림자를 훔쳐보는 방

화로 잿더미 속엔 두근두근 타다 만 심장 하나

치마 속엔 나오다 만 피투성이 머리가 하나

죽음을 잊은 소녀는 낡은 털실을 풀어 환상을 짜고

첨탑 아래에선 내일이면 막노동하러 도시로 떠날

눈먼 왕자가 마지막 세레나데를 쥐어짜는 방

꿈이 도마뱀처럼 꼬리를 자르고 뿔뿔이 달아나버린 방

나선형 계단 모양으로 꿈틀거리며 늘어지는 긴 혀

지칠 줄 모르고 자라나는 흰 머리카락의 연주, 어지러운 화음

앵무새 깃털을 꽂은 벙어리 마법사가 눈을 감고 날아가다 멈추는 방

땅에 뒹구는 흙투성이 혀가 철 지난 이야기를 주절주절 써 내려가고

흰 우유 가득 담은 항아리 인 처녀처럼

슬픔이 조마조마하게 창문을 두드릴 때

꿈에 빼앗긴 얼굴만이 절대로 늙지 않고

남아 환대하는 그 방

 

kimkyoungin-180.jpg

 

1972년 서울 출생
2001년 《 문예중앙》 등단
시집 『 한밤의 퀄트』『얘들아, 모든 이름을 사랑해』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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