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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피린 / 문정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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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133회 작성일 16-05-09 12:04

본문

 

아스피린

 

문정영

 

둘러보니 썩은 서어나무 속이다

내가 잎이었는지, 잎의 언저리에 피는 헛꿈이었는지

불우한 생각이 각설탕 태우는 냄새 같은

 

기억 같은 건 믿지 말라, 그 말을 새가 물고 있는 동안 네가 내 안에 멈추어 있었는지, 비어 있었는지

있다가 사라져버린 것이 나에게 묻는

 

눈발이 내리는 날

서어나무 발자국은 길 가운데 멈추고, 서쪽 뿌리에서 어떤 처연한 결기가 걸어나온다

 

수첩에 적어 둔 계절은 느리게도 오지 않는다

눈을 감아도 네가 내 안에서 눈에 덮여 있는 저녁은 갈까마귀 목덜미 빛이다

 

아침에 먹는 아스피린으로 내 피는 멈추지 않는다

그렇게 흘러 너에게 가다보면 나는 조막만 해진 밀랍인형이 될 것이다

결국, 이란 허공의 말이 천천히 지혈되고 있었다

 

moonjungyoung-160.jpg

 

전남 장흥 출생
88년 건국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97년 《월간문학》 등단
시집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낯선 금요일 』『잉크 』『그만큼』 등
      《시산맥 》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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