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불어 너도나도바람꽃 / 이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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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131회 작성일 16-06-08 09:34본문
바람 불어 너도나도바람꽃
이원규
밤의 휘파람을 부니 밤바람이 분다
간절히 바라니 봄바람이 불어온다
파풍(破風)의 대숲에 깃들어 성난 깃털을 쓰다듬더니
수다쟁이 봄바람이 창문을 두드린다
오래 잊었던 눈짓 손짓들의 살가운 부채질
그날 밤 돌담 살구나무 아래 꼴깍 침 넘어가던 소리
하릴없이 손가락 관절을 꺾던 소리
캄캄해도 부끄러워 눈썹까지 이불을 끌어올리던
신열의 달뜬 너도바람꽃
삼십 년 전의 봄바람이 불어온다
입술 닿은 자리마다 후끈 열꽃이 피어난다
지천명을 넘어서야 속살 깊이 되새기는
변산바람 풍도바람 너도바람 나도바람
만주바람 꿩의바람 홀아비바람 조선남바람
회리바람 태백바람 세바람 들바람
하많은 내 생의 바람꽃들에게
그래, 나쁜 놈이야, 나는, 두 무릎을 꿇는다
간절히 바라니 다시 봄바람이 분다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의 자작나무
그 숲속에서 불던 흙피리 소리 이제야 당도한다
저 바람이 데려오다 흘린 낙엽 하나
오늘밤은 또 어디에서 잠드는지
흰 목덜미를 돌아온 옛 바람들에게
이미 푹 젖은 낙엽의 혀로 안부를 묻는다
네가 바라니 나도 바라는 너도나도바람꽃
죽을 때까지 제발, 죽지 마
애타게 밤의 휘파람을 부니 봄바람이 불어온다
1962년 경북 문경 출생.계명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1984년 《월간문학》과 1989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 『빨치산 편지』, 『지푸라기로 다가와 어느덧 섬이 된 그대에게』,
『돌아보면 그가 있다』,『옛 애인의 집』,『강물도 목이 마르다』,
산문집 『벙어리 달빛 』.
제16회 신동엽창작상, 제2회 평화인권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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