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접도 / 서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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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993회 작성일 16-07-01 09:21본문
화접도(花蝶圖)
서정임
허공 너머 활짝 열려있는 또 다른 세계의 문이 넓다 그러나 그곳으로 쉽
사리 날아가지 못하는 나비가 오늘도 온몸으로 꽃의 품을 파고든다
그녀가 그의 등을 닦는다 다리를 문지른다 서서히 마비되어가는 그의
몸뚱어리, 그 차가운 살갗의 감촉이 비수처럼 그녀의 가슴을 찌른다 창밖
목련은 태양이 질 때 꽃을 피우던가 나비 한 마리가 눈부신 그 소복 사이
를 가로질러가고 있다
옆 침대 시트가 교체되고 있다 몇 달을 머물다 어젯밤 떠난 김 영감의
흔적을 말끔히 지우고 있다 이제 저 자리에 누가 들어 긴 호스를 코에 꽂
고 있을까 어느 꽃이 나비에게 온몸 진액을 빨릴까
한 방울 힘없이 흘러내리는 타액 같은 눈의 초점이 그녀를 본다 그녀의
노란 얼굴에서 함께했던 지난 봄날 한 조각을 흐릿하게 읽는 그가 입꼬리
를 슬쩍 추어올린다 이내 그 햇살 든 입가에서 묻어나는 저녁 어스름
그녀가 그에게 큰 소리로 말을 건다 한순간 멀어져가는 그의 의식을 붙
잡는다 그는 온 힘을 다해 손가락을 까닥거리고 서로 의지한 채 못내 서로
놓지 못하는 저 깊숙한 포옹, 지나온 시간을 모두 걸러낸 꽃과 나비의 맑
은 영혼이 합일한 합숙의 날들이 길다
전북 남원 출생
2006년 계간 《문학·선》 등단
2012년 경기문화재단의 문예창작지원금 수혜
시집으로 『도너츠가 구워지는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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