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의 시간들 / 김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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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327회 작성일 16-08-04 09:35본문
매미의 시간들
김 산
오늘은 엄마의 생일.
미역국을 끓이진 않았다.
소고기도 바지락도 없지만 나는 누구보다
맛있는 미역국을 끓일 자신이 있다.
나는 거기서부터 잘못 미끄러졌다.
언제든 끓일 수 있다는 것은 결국 식어버린다는 것.
화분에 물을 주고 이파리 뒷면을 조금 쓰다듬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아파트 사이로 웅크린 거대한 그늘.
엄마는 아무렇지 않게 새벽 일찍 출근을 했지만
마지막 매미가 자지러지게 울고 있다는 것을 알기는 알까.
두꺼운 콘크리트를 뚫는 전기드릴 소리 사이로
매미가 한 시절을 읊는다.
미안하다는 감정 사이로 어떤 슬픔은 조금 무색해진다.
좌식 테이블에 앉아 허리를 구부리고
매미가 태어났을 시간에 대해 쓴다.
이윽고, 나는 쌀뜨물에 미역을 불리며 엄마를 기다린다.
딱딱하게 건조한 매미의 날개가 보드랍게 흐느적거린다.
죽은 매미가 다시 꿈틀거린다.
엄마의 오늘은 생일.
엄마보다 더 늙은 외할머니가 걱정인 오늘.
매미는 늘 매미 때문에 운다.
치매에 걸린 은행나무 밑으로 알약들이 수북하다.
툭툭, 거리의 슬픔들을 짓이긴다.
똥냄새를 풍기는 거리는 바야흐로,
활기차다.
1976년 충남 논산 출생
2007년《시인세계》신인상으로 등단
시집『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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