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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 / 정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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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256회 작성일 16-08-10 08:04

본문

 

웃음

 

     정병근

 

 

   웃음의 꼬리에는 비루먹은 개가 앉아있다 웃음의 안질에는 충혈이 들어차있다 웃음의 등에는 긋고 지나간 칼끝의 흔적 웃음의 귓속에는 너를 확인하는 말이 속삭이고 웃음의 손아귀에는 너의 얼굴이 흥건하다 웃음의 이마에는 푸른 구름이 흘러가고 웃음의 뒤통수에는 무수한 화살이 꽂혀있다 웃음의 막다른 골목에는 욕이 튀어 나온다 웃음의 똥구멍에는 솔이 난다

 

   웃음은 상가에서 웃는다 웃음은 영정 사진 속에서 웃는다 웃음은 오줌을 누면서 웃는다 웃음은 너를 베물고 웃는다 웃음은 죽은 어머니 앞에서 웃는다 웃음은 거울을 보면서 웃는다 웃음은 쨍그랑 깨어지면서 웃는다 웃음은 산산조각으로 흩어지며 웃는다 웃음은 쏟아진 얼굴을 쓸어 담으며 웃는다 웃음은 배꼽을 잡고 웃는다 웃음은 데굴데굴 구르면서 웃는다 웃음은 길을 가다가 웃는다 웃음은 제문을 읽으면서 웃는다 웃음은 면도를 하다가 웃는다 웃음은 머리를 깎으면서 웃는다 웃음은 텔레비전을 보면서 웃는다 웃음은 밥을 먹다가 웃는다 웃음은 웃다가 운다

 

 

 

1962년 경북 경주 출생
동국대 국문과 졸업
1988년《불교문학》등단
시집 『오래 전에 죽은 적이 있다』『번개를 치다』『태양의 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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