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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독파티 / 류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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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824회 작성일 16-08-23 13:28

본문

 

묵독파티

 

  류인서

 

이곳의 약속은

‘오직 고요할 것’

 

블라인드 틈으로 스며든 그늘이

탁자를 삼키고

꽃병뿐인 액자를 삼킨다

 

침대 위에는

읽다 펼쳐둔 책처럼

그의 벗은 엉덩이가 있다

 

모서리가 희미한 창문에다

새들이 흉강의 남은 빛을 베껴 넣는다

소리의 그늘까지가 빛의 유희인가

 

숨소리는 내가 읽은 드물게 에로틱한 페이지

간빙기의 따뜻함이 조금

세속적인 저녁기도에 녹아든다

 

우리가 모래의 책이라면

그의 엉덩이를 펄럭이는 사구라 해도

이상하지 않다

 

석고가루와 물을 굳혀 만드는 입체조형물처럼

그의 엉덩이는

내가 안경 없이 읽고 싶은

뜨겁고 서늘한 페이지들

 

동요하는 세계에 대한 고백처, 이곳은

우리가 방문한 언덕마을의 태연한 하루

 

사막에는 안전기지가 없다

나는 내 사랑을 동기화한다

 


 

류인서~1.JPG

  

1960년 대구 출생
2000년 《시와사람》신인상
2001년 《시와시학》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그는 늘 왼쪽에 앉는다』 『여우』 『신호대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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