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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책 / 허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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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428회 작성일 16-08-30 10:10

본문

 

잊혀진 책

 

허혜정

 

 

대출기록카드엔 그를 찾아온 누구도 없다

그의 책은 참배객 하나 없는 납골당을 닮아 있다

왠지 궁금증이 일어 스쳐가던 칸막이에 멈춰선 방문객처럼

입김이 서린 벽 하나 사이로 그와 마주서 있다

간혹 지나치던 이들이 무심히 훔쳐보았을 투명한 가슴

저녁 해를 받고 있는 흑백사진속의 소탈한 미소

이상해, 내가 찾던 책은 아닌데

위패도 없는 목항아리를 닮아 있는 책은

화환도 준비하지 못한 낮선 이와 마주한다

꽤 묵은 책인 듯 쩍 붙었다 떨어지는 책장에는

뭐랄까 추억을 따라가는 휘파람같이 슬픈 문장들

한 방울의 잉크가 세상을 물들여놓듯

어둠에 물든 마음을 들여다보던 말

낯선 사람의 말일 뿐이었는데

이상하게 오래도록 가슴속에 울리던 말

한적한 추모공원 오솔길을 서성이는 사람처럼

낯선 이의 추억 속을 걷는다

붉게 타들어가는 석양빛 하늘 아래

그는 이토록 많은 이를 그리워했는데

가까운 사람에게도 잊혀 진 걸까 그럴 수 있어

어쩌다 마주친 무명묘에 강아지풀 하나를 올려놓듯이

대출카드에 모르는 사람의 이름이라도 남겨야겠어

노을 진 계단으로 천천히 발을 옮기다보면

살아서도 마냥 스러지도록 내버려둔 유골 같은 말

보드라운 유골은 망각조차 슬프지 않을 때 비로소 흙이다

벌써 어두웠지만 그래도 약간 저녁 빛이 남은 곳에

마지막 책장을 들추던 손길도 한없이 지워지면

책들의 슬픔을 생각한다, 넘쳐나는 책들 속에 잊혀져간 말들을

이 북적이는 도시에서 외로움은 최고의 선물이고 침묵도 그러하니

나는 발견되지도 기억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계속 쓰고 있을 것이다

  


 


  

1966년 경남 산청 출생
1987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시 등단
1995년 《현대시》 평론 당선

199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평론 당선
시집 『비 속에도 나비가 오나』『적들을 위한 서정시』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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