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밖으로 내리는 눈 / 강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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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616회 작성일 16-09-02 09:58본문
그림 밖으로 내리는 눈
강인한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일리야 레핀의 그림 속으로 들어와 눈을 털고
낡은 외투 뼈아픈 세월을 털고
검정 모자를 벗어든 저이!
깜짝 놀란 건 의자였다, 딸꾹질처럼 피아노가 멎고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잿빛 시간 속으로
가뭇없이 눈이 내렸다.
미술관 유리창 밖으로도 먹먹한 눈이 내리고
당신은 내 곁에 앉아 있었다, 참새처럼
러시아의 눈 내린 광장에 새 발자국을 쿡쿡 찍고
백 년 전 가난한 사람들이
손 흔들며 흩어지는 모습을 우리는 보았다.
사랑한다는 것은
오래 쌓인 눈의 무게를 마음에 달아 저울질하며
더운 커피를 번갈아 마시는 것,
타고 온 마차를 돌려보내고
돌아가는 바퀴 소리에 옛날의 아픔을 실어 보내는 것.
녹기 시작한 층계에 다시 눈이 내려
서로서로 꼭 붙들고 층계를 밟는 건 즐거운 일,
반짝반짝 아르페지오로 빛나는 음악
날리는 벚꽃 사이로 한 줄씩 섞여들었다.
1944년 전북 정읍 출생
전북대학교 국문과 졸업
196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으로 『이상기후』 『불꽃』 『전라도 시인』
『우리나라 날씨』 『칼레의 시민들』 『황홀한 물살』
『푸른 심연』 『입술』 『강변북로』,
시선집 『어린 신에게』, 시비평집 『시를 찾는 그대에게』 등
1982년 전남문학상, 2010년 한국시인협회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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