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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우 / 이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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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035회 작성일 16-09-07 09:54

본문

 

기우


이영광

 


먼 훗날 당신이 아파지면

우리가 맨발로 걷던

비자림을 생각하겠어요

제주도 보리밥에 깜짝 놀란

당신이 느닷없이 사색이 되어

수풀 속에 들어가 엉덩이를 내리면

나는 그 길섶 지키고 서서

산지기 같은 얼굴로

오가는 사람들을 노려봤지요

비자림이 당신 냄샐 감춰주는 동안​

나는 당신이, 마음보다 더 깊은

몸속의 어둠 몸속의 늪 몸속의 내실(內室)에

날 들여 세워두었다 생각했지요

당신 속에는, 맨발로 함께 거닐어도

나 혼자만 들어가본 곳이 있지요

나 혼자선 나올 수 없는 곳이 있지요

먼 훗날 당신이 아파지면

웃다간 눈물나던 비자림을 찾겠어요

 

* 비자림 - 제주도의 관광지, 비자나무 숲

  


leeyg.jpg

 

경북 의성 출생
고려대학교 및 동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1998년《 문예중앙》 등단
시집으로 『직선 위에서 떨다』『그늘과 사귀다』『아픈 천국』
『나무는 간다』등
2008년 노작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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