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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초 / 우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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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181회 작성일 16-09-09 09:37

본문

벌초

 

   우대식

 


여름이 다 무너져 갈 무렵

고추에 농약을 준다

무농약, 무농약

에이 모르겠다

농협에서 사온 농약을 적당히 타서

산 아래 밭으로 올라가

바람의 결을 따라 농약을 준다

어차피

내다 팔 물건 아니니

적당히 약을 치자

농약을 주면서 별 씨도 안 먹히는

생각을 하다가 보니

400포기 고추밭을 얼추 다 돌았다

그 무렵 덜그럭 덜그럭

펌프질만 요란할 뿐

농약통에서 약이 잘 나오지 않았다

농약통이 마지막 숨을 내 뿜으며

큰 한 숨을 토해냈다

아버지 임종 때 내쉬시던

마지막 숨소리와 너무나 닮았다

약통을 등에 모시고 내려오면서

생각했다

너무 가볍다

벌초할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1965년 강원도 원주 출생
1999년 《 현대시학》등단
시집 『 늙은 의자에 앉아 바다를 보다』『 단검』『설산 국경』
산문집『죽은 시인들의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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