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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의 얼굴 / 길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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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867회 작성일 16-09-29 10:02

본문

 

유령의 얼굴

 

 길상호

 

쪽마루에는 사진 한 장,

햇빛이 달라붙어 게걸스럽게

여자의 얼굴을 뜯어먹고 있었다

입가의 미소까지 다 핥고도

아직 배가 차지 않는지

깨진 액자의 유리 틈까지 쪽쪽 빨아댔다

 

불꽃이 만개했던 그날 이후

흉흉한 소문들만 수시로 태어나던 집이었다

그을음이 그려놓고 간 벽화 속을

불타 죽은 고양이가 서성인다거나

손톱 빠진 아이들이 나타나서

검은 문짝을 밤새 긁어댄다거나

 

유령처럼 희미해진 사진 속 여자는

고양이에게, 아이들에게

어떤 저녁을 떠먹여주려던 걸까

명줄처럼 잘린 가스배관에서는

무거운 흐느낌이 흘러나온다고도 했다

 

표정이 다 증발하고 없어서

물끄러미 바라보면 흘려버릴 것 같은

그 얼굴, 남은 윤곽까지 긁어먹으며

햇빛은 입술이 조금 검어졌다

 


 

kilsh.jpg

 

1973년 충남 논산 출생
한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200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오동나무안에 잠들다』『모르는척』『눈의 심장을 받았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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