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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좋았었지, 불타면서 / 이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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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046회 작성일 16-10-04 09:31

본문

 

그땐 좋았었지, 불타면서

 

  이덕규

 

 

아주 추운 밤이었지

황량한 벌판 한가운데서 꺼져가는

불씨 위로 나는 팔뚝을 하나 던져 넣고

당신은 다리 한 짝을 던져 넣었지

 

돌아갈 곳도 없고 땔감도 떨어져 없던

그 때 이내 나머지 다리 한 짝과

팔 한 짝도 던져 넣었지

당신에게 건너갈 다리도 없이

당신을 만져볼 손도 없이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사이에 두고

우리는 그저 바라만 보다가

그래도 춥다, 마지막으로 남은 몸마저

동시에 불길 속에 던져 넣었지

 

마음이 추워 몸을 태우던 그 때

우리는 좋았지, 좋았었지 하나의

불꽃이 되어 불타면서

불타면서 그 캄캄한 벌판을 밝혀 건넜지

 

 


1961년 경기 화성 출생.
1998년 《 현대시학》에 「揚水機」 외 네 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2004년 제9회 현대시학작품상 수상
제4회 시작 문학상 수상
시집 『다국적 구름공장 안을 엿보다 』『 밥그릇 경전』『 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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