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구아나 / 연왕모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807회 작성일 16-10-12 09:43본문
이구아나
연왕모
거대한 창을 보고 앉아 있는 건
이구아나다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흐려지는 딱 그만큼씩
고개가 굽는다
창 너머 그리고 아래 어딘가
모여 있는 기억들이 움직인다
수년 전의 목소리가 천천히 솟아올랐다 흩어지고
더 오래 전의 목소리가 또 솟있다가 흩어져버린다
소리들은 글자로 다시 먹물로 모여 공기 중에 녹아든다
그들이 흩어질 때마다 하늘은 조금씩 어두워진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리지만
답을 찾은 것도 또 누군가를 찾기 위함도 아니므로
아무도 없는 곳을 보고도 다시 고개 돌리지 않는다
생각이 넘어가는 건 고개를 돌리는 것과는 다른 이유
해는 이미 넘어갔고
창은 어두워졌다
거울이 된 창에 비치는 건
이구아나의 몸이다
그의 곁 저 너머 어둠의 건너편에서 잠이 온다
썩은 가구와 녹슨 도구들의 숲을 지난다
하루하루 버려둔 그것들이 쌓여 숲을 이루고
썩고 녹슬어 부드러워진 그 길을
느릿느릿 걸어가는 건
이구아날 것이다
지는 해 그리고 떠오르는 달빛에 모두 물든 자
1969년 서울에서 출생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1994년 《문학과사회》로 등단
시집 『개들의 예감』 『비탈의 사과』
1998년 '현대시동인상' 수상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