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물을 쓰다 / 서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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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940회 작성일 16-11-08 09:24본문
그물을 쓰다
서정임
양쪽으로 늘어선 전나무들이 팔과 팔을 뻗어 그늘을 만들어 놓은 길
새들의 노랫소리 들리지 않는다
태양은 멀고 그 길을 걷는 등 뒤 날개 접힌 자리가 가렵다
길은 때로 그물이다
하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누군가 만들어 놓은 계획의 산물이다
길이 덥다
포획된 발목이 점점 무거워진다
이 길에 들었던 새들은 모두 어디로 날아갔는가
애초에 둥지에 문을 달지 않는 새들은 저 허공 속 수많은 길이 나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 곳에 꽂힌 누군가의 욕망이 불러온 이 건조한 기후
길가 나무들의 활엽의 눈들이 모두 침엽의 눈으로 바뀌어 있다
사랑해 사랑해 너를 사랑해
더욱 어두워지는 그물 속 그늘이 압박붕대처럼 나를 조여온다
내가 빠져나갈 한 코 찢어진 틈은 어디 있는가
나의 새로운 길의 모색을 저지하는 전나무들의 눈총이 쏟아진다
나는 이대로 이 길을 가야 하는가
저들의 일침에 일침을 가하고 뒤돌아서야 하는가
걷어낼 수 없는 어둠 속 잠시 멈춰서 있는,
내 풀리지 않는 고뇌가 크다
전북 남원 출생
2006년 계간 《문학·선》등단
2012년 경기문화재단의 문예창작지원금 수혜
시집으로 『도너츠가 구워지는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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