킁킁거리는 지상 / 김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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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547회 작성일 17-01-17 09:49본문
킁킁거리는 지상
김정수
늙어가는 개의 등에 날개를 달아줬지
지상의 것에만 킁킁거리던 개가 멀건 구름에 코를 박고 전생을 더듬어
초승달 같은 꼬리조차 뜯어먹을 수 없는 기억
먼저 태어난 개띠의 고향이라 하는 말은 아니지만
세상에 영원한 유약함은 없어 물리고
물리는 게 탄생의 법칙, 달에 생겼다 사라진 검은 가족사야
개가 소리없이 삭(朔)을 건너
형제의 난이 블랙홀에만 있는 건 아니야
하늘의 병동은 파랑이거나 검정
아무리 피가 붉어도 달은 쌍둥이 동생이 없어
달의 그늘에는 손목을 붙잡아 맬 침대도 헝겊도 없어
손을 감싼 달의 장갑은 무표정해
날개가 있어도 날지 못하는 것들은 쉽게 늙어가지
휴일의 면회는 무료할 뿐이야
후생의 가족은 말이야,
날개 달기 전과 후가 다른 타로점 같은 거야
상처는 건드릴수록 덧나는 건 알고 있지
지상으로 추락한 돌은 다시 허공으로 돌아갈 수 없어
날개를 달았다고 뭐 다를 것도 없긴 해
하늘에 머물러도 뒷다리 들고 오줌 누는 건 여전하더군
소식 없이 잘 사는 것도 중병이야 늙은 개의
죽음 뒤가 걱정이야 날개에 불을 달아 하늘로 올려보내면
기억은 점점 사라져 전생으로 흘러가지
- 시산맥 2016년 겨울호에서
1963년 경기도 안성 출생
경희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1990년 《현대시학》 등단
시집 『서랍 속의 사막』 『하늘로 가는 혀』 등
2013년 한국예술위원회 창작지원금 수혜
제28회 경희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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