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해진다 / 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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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876회 작성일 17-01-23 15:03본문
편안해진다
김경수
꽃잎이 떨어진다.
시간을 흘려보내고 물질이 되는 침묵이다.
물방울이 떨어져 강이 되는 소리이다.
기타의 현(鉉)을 튕기던 오래된 악사도 떠날 준비를 한다.
오래된 집이 낡아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 세상에 영원한 나뭇가지는 없다.
떨어진 꽃잎이 말라 바스락거린다.
주름진 얼굴이 떠날 준비를 하는 것이
이젠 아주 평화스럽다.
소멸과 탄생이 거리에 버려진다.
없다는 당연한 사실에 대해 이젠 아주 편안해진다.
현실이란
날아가는 새의 날갯짓을 올려다보는 젖은 눈이라고 할까?
현재 이 순간이란
수정액(修正液)인 화이트(white)로 지운 단어라고나 할까?
인간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 한 점으로서의 순간이듯이
우리 모두는 기억 속에서 지워지는 문(門)이 되기 싫은 까닭이다.
주머니에 바다를 넣고 걸어간다.
인간의 죄를 보고 성자(聖者)가 눈물을 흘리자
주머니 속의 바다가 출렁인다.
사람들이 물병 속에 노래를 가득 넣자 성당은 사라지고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을 뚫고 바닥에 쏟아진 햇빛이
새로운 언약의 붉은 꽃이 되어 자라고 있다.
-《시산맥》 2016년 겨울호
1957년 대구 출생
1993년 ≪현대시≫로 등단
내과 전문의 (의학박사)
시집『하얀 욕망이 눈부시다』,『다른 시각에서 보다』
『목숨보다 소중한 사랑』 『달리의 추억』
문학ㆍ문예사조 이론서 『알기 쉬운 문예사조와 현대시』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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