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다 / 안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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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056회 작성일 17-02-22 00:02본문
기대다
안명옥
한때는 바람에 기대어 살며 흔들리던
우리집 베란다 화초가
오래 버려둔 시간
망각에 기대어 살며시 꽃을 피운다
나는 어렸을 때 서해에 기대어 살고
열아홉에 독립했을 때는 나이에 기대어 살았다
봄담에 기대어 살던 노란 꽃을 피우던 개나리처럼
스물넷에 준비 안 된 결혼을 했다
더 이상 기댈 곳이 없는 사람들은
신발을 따라 교회에 가거나
절에 간다 옛사랑은 입산을 하고
술에 기대어 살던 선배가 하는 말,
아내는 흰머리 나면 검은머리 뽑아주고
애인은 흰머리 나면 얼른 흰머리 뽑아준다는데
나는 사람에게 기대지 않으면서
평화가 오고
평화는 차츰 불편에 기대어 사는 법을 터득한다
불편은 생각에 제 몸을 기댄다
핸드폰은 늘 무음을 좋아하여 약속을 만들지 않고
소리는 변두리에 사는 동안
자연 속에서 비로소 자유에 몸을 기댄다
귀뚜라미가 달에 기대어 밤을 견딜 때
취업 안 된 제자, 악기에 기대어 산다는 안부가 온다
-《열린시학》 2016년 여름호
경기 화성 출생
2002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서사시집 『소서노』 『나, 진성은 신라의 왕이다』
시집 『칼』 『뜨거운 자작나무 숲』
동화 『강감찬과 납작코 오빛나』 『금방울전』 『파한집과 보한집』 등
성균문학상 우수상, 바움문학상 작품상, 김구용시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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