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사발 / 정호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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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3,257회 작성일 17-02-27 11:31본문
묵사발
정호승
나는 묵사발이 된 나를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첫눈 내린 겨울산을 홀로 내려와
막걸리 한잔에 도토리묵을 먹으며
묵사발이 되어 길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나를 사랑하기로 했다
묵사발이 있어야 묵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에 비로소
나를 묵사발로 만든 이에게 감사하기로 했다
나는 묵을 만들 수 있는 내가 자랑스럽다
묵사발이 없었다면 묵은 온유의 형태를 잃었을 것이다
내가 묵사발이 되지 않았다면
나는 묵의 온화함과 부드러움을 결코 얻지 못했을 것이다
당신 또한 순하고 연한 묵의
겸손의 미덕을 지닐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묵사발이 되었기 때문에 당신은 묵이 될 수 있었다
굴참나무에 어리던 햇살과 새소리가 묵이 될 때까지
참고 기다릴 수 있었다
-《불교문예》 2015 겨울호
1950년 대구 출생
경희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 졸업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시부문,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 『서울의 예수』 『새벽편지』
『별들은 따뜻하다』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이 짧은 시간 동안』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외 다수
시선집 『흔들리지 않는 갈대』 『내가 사랑하는 사람』
산문집 『위안』 『너를 위하여 나는 무엇이 될까』
어른을 위한 동시집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동화집 『바다로 날아간 까치』 『슬픈 에밀레종』
『산소처럼 소중한 정호승 동화집』 『물처럼 소중한 정호승 동화집』
어른을 위한 동화집 『항아리』 『연인』 『기차 이야기』 『비목어』 외 다수
제19회 공초문학상, 제23회 상화시인상
제9회 한국가톨릭문학상, 제11회 편운문학상
제12회 정지용문학상, 제3회 소월시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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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스타일님의 댓글
LA스타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묵사발 .. 어찌보면 우리의 고향의 맛이 묻어나는 시제이기도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