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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쇄를 채우다 / 이윤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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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767회 작성일 17-03-13 15:12

본문

쇄를 채우다

 

이윤숙

 

현관에 양말을 벗어 놓았다

아니, 벗었다기보다 족쇄를 풀어 놓았다

풀려 늘어진 발목 아래로 급하게 빠져나오지 못한

앞발과 뒷발이 뛰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

짧은 보폭으로 보아 많이도 달그락거렸다

지문인식기가 열어주지 않으면 해고라던 월가의 어떤 사람처럼

족쇄는 더 큰 족쇄를 채우길 원했을 것이다

억지로 풀려면 더 조여오는 것이

족쇄라 했던가

다 퇴근한 텅 빈 사무실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밑바닥을 더듬었을 것이다

걷다가 돌아오지 못한 것들에게

묻고 또 묻다 퉁퉁 부운 쇳내를 삼키고 집으로 달려오는 길

얼마나 급했을까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벗어버린 젖은 양말

채 마르기도 전 성근 발바닥이 훔쳐보던 내가 손을 내밀자

꺼내놓는다

내일의 족쇄를

 

 


이윤숙시인.jpg

 

1961년 충남 출생

2017년 충청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

광명전국신인문학상 수상

 

==========================

시마을에서 오랫동안 활동해 오신 이윤숙 시인께서

2017년 2월 발표한 충청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서 시 '흑임자'로

당선의 영광을 안았습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문운을 기원합니다 

 

흑임자

 

이윤숙

 

 

도리깨가 공중돌기로

사내의 뒤통수를 내리쳤다

사내가 쓰러지고

바싹 마른 주머니가 솟구치며 털린다

여름내 땡볕에서 품팔이한 쌈짓돈

비 맞은 날에도 바람맞은

날에도 쉬지 않고 일을 해서 모은 돈

닳아 동그랗게 말린 돈

속이 타서 까맣게 쩐 돈

뼈가 부서지도록

움켜지지만 속절없이

도리깨 손바닥에 돈이 다 털리고 있다

사채보증으로

전답 다 팔아넘긴 아버지 본적 있다

부러지고 찢어지고

월세방이 깻대처럼 버려졌던 날

아버지 눈물 같은 돈

나는 시퍼런 깔판 위에 소복하게 쌓인

돈다발을 채로 걸러 자루에 담았다

한 줌 쥐어 주르륵 세어보는

향긋한 아버지 땀 냄새가 뼛속 깊이 스민다

 

- 2017년 충청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

 

<심사평>

 

"삶의 애환, 서정적으로 표현"

 

 

충청일보 정유년 신춘문예 응모작품들은 그 역사만큼이나 질감이 풍성했다.

시 시조의 응모 작품만 해도 500여 편에 이르고 전국은 물론 해외에서 까지 참여했다.

그러나 양에 비해 작품 수준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시나 시조의 작품 뿌리는 율격이며 탁월한 상상력이 꽃이다. 간결하면서도 내용이 충실하고 서정과 철학이 담겨있어야 한다.

이것이 현대시의 근간이며 생명력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번 응모 작품들은 자신의 개성을 살린 심안이 아닌 관념이나 감상에 치우친 작품이 많았다. 간결하면서도 전달력 있고 사고력있는 작품을 기대했으나 이에 미치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이번 응모 작품 중 몇 편은 삶의 체험을 생생한 감각으로 녹여냈고 현대 사회의 어려움을 따뜻한 긍정의 힘으로 극복해 나가도록 표현해 냈다.

 

그 중 맨 윗자리를 차지한 이윤숙님의 '흑임자'는 시 전체를 아우르는 몰입과 함축성, 주체화가 잘 녹아 있었다.

 

흑임자(검은깨)를 주제로 삶의 애환을 서정적으로 잘 표현해 냈다. 손에 움켜쥐어 보려고 하지만 속절없이 쏟아져버리는 물질의 속성을 잘 그려냈다.

 

이밖에도 최종 심사에 올랐던 박지현님의 '족적', 박민서님의 '구유'등의 좋은 작품들이 돋보였다.

 

[심억수 시인/유제완 시인·수필가]

 

<당선소감 / 이윤숙>

 

당선 소식을 듣는 순간 놀라 봄이 철퍼덕 사무실 안으로 떨어졌습니다. 나뭇가지에서 새순이 돋고 주먹을 불끈 죈 산수유가 피고 개나리가피고 진달래가 피고 냉이 씀바귀 꽃다지 깨알처럼 웃습니다.

 

번지는 마구 번지는 봄은 이 세계의 마지막처럼 한꺼번에 녹아내렸습니다.

 

내 가슴으로 녹아내렸습니다.

 

어느 날 내게 녹아 든 깨 꼬투리에서 아버지 삶의 내력을 보았습니다. 앙상하게 마른 삶의 내력이 씨앗이 되어 내게로 박혀버린 이 시 쓰기가 하나둘 여물 때마다 꼬투리를 통과하는 햇살이 내 삶이 묻혀준 색깔이라 생각했습니다.

 

연보랏빛 깨꽃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준 씨앗들.

 

나는 또 이 씨앗을 심을 겁니다.

 

싹이 돋고 잘 키운 가을 어디쯤 사내의 뒤통수를 내리쳐 쓰러트릴 겁니다.

 

그 사내가 그렇게 움켜쥐고 싶어 했던 검게 쩐 돈 한 자루 모아 주르륵 세어보는, 고소한 땀 냄새를 맡을 겁니다.

 

아버지의 냄새를 하늘 어딘가에서 지켜보고 계실 아버지께 이 영광을 돌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늘 곁에서 응원해주는 남편과 시험 준비로 바쁜 아들 경준이, 프랑스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딸 경민이 고맙고 시마을 동인 시인님들 감사합니다.

 

부족한 저의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도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생활에서 씨앗을 얻겠습니다. 지금 이 마음 초심을 잃지 않은 열심히 노력하는 시인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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