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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스톡홀름 3 / 곽은영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797회 작성일 17-04-07 11:40

본문

호텔 스톡홀름 3

 

곽은영

 

 

1

버리고 가는 이와 담아가는 이

스톡홀름을 떠날 때는 그렇다

낚시꾼들은 절대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들을 위해 예쁜 마크의 냅킨과 타월

쿠키와 차를 넉넉하게 가져다 놓았다

낚시꾼들의 방은 약간의 생선 비린내가 남지만 말끔하게 치울 수 있다

버리고 가는 이들은

어딘지 수척해 보였다 그들이 현관을 나설 때는

트렁크의 부피가 그다지 줄어든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빗 양말 쪽지 빵조각

심지어 사람도 버리고 간다

나는 그들을 위해 일부러 작은 쓰레기통을 둔다

버리고 싶은 것은 그냥 두고 떠나면 되도록

그들은 고통에서 깨끗하게 빠져나가고 싶기 때문에 무엇을 버린다

 

2

스톡홀름에 버려진 것 중 가장 크고

치우기 곤란한 것은

돌아갈 곳을 잃어버린 사람이다

버려진 사람은 여러 날의 숙박료를 미리 지불하고

그 자리에서 물러져 땅 속으로 스며들길 원하는 토마토처럼

방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도 그랬다

 

바짝 깎은 머리와 조금 퀭한 눈빛의 그는

하루 종일 TV를 보았다

식사를 가져다주며

스톡홀름은 사람을 버리는 곳이 아닙니다

말하고 싶었지만

더 필요한 게 있으세요 라고 말했다

그리고 괜찮다는 그에게

1층의 전화기를 쓰셔도 됩니다

친절하게 덧붙였다

 

3

가까운 곳에 바다와 울창한 숲이 있다

인정하기 싫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스톡홀름은 사람을 버리기에도 적당한 곳에 있다

잔인함은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버려진 사람은 침대에서 일어나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

침대에서 일어나 1층으로 내려와 전화를 걸면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

삐걱 삐걱

나는 새삼 계단의 낡은 소리를 기다렸다

적어도 내 생각엔 그랬다

 

4

누구나 저마다의 이유가 있기 때문에 스톡홀름에 온다

불행히도 나는 호스트일 뿐

의사나 친구도 되어주지 못한다

 

5

나는 그가 스스로를 버리지 않기를 바랐다

이기적이게도

스톡홀름을 죽음의 출발지로 만들 수는 없었다

나는 3번의 식사시간 외에

차와 쿠키를 먹는 간식과 칩과 맥주를 먹는 오락을 생각해냈다

여행객들을 감시해서는 안 되지만

스톡홀름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의 얼굴에 조금 놀란 빛이 확연했다

이런 서비스가 제공되는 줄 몰랐습니다

그가 짧으나마 여행객의 설레는 표정을 짓자

나는 조금 안심이 되었다

 

6

그와 나는 테이블에 마주 앉아 카드를 펼쳤다

나는 하트의 퀸을 좋아한다

그는 솜씨있는 카드꾼이었다

내가 하트 퀸을 노리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

그래서 번번히 졌다

그는 노련한 스페이드 잭이었다

가장 큰 패는 누구나 원하죠

그래서 실패하기도 쉽습니다

그는 짧게 말했다

문득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가 마지막 패를 열었다

스페이드 에이스

나는 한 번도 이기지 못했지만 그도 표정이 어두웠다

스페이드 에이스

아마도 그는 스스로 품은 칼에 찔렸을지도

나는 조심스럽게 문을 닫아 주었다

 

한밤 중 하루의 쓰레기를 버리려고 뒤뜰에 나왔을 때

그의 방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7

그가 지불한 만큼의 시간을 채우자 나는 불안해졌다

그의 계단소리를 듣기 위해 내 귀는 이미 뾰족해졌다

더 머무를 것인지 물어봐야 했다 스톡홀름의 규칙이니까

그러나 두려웠다

망설이던 아침 기다리던 발소리가 났다

그가 쥐고 있던 마지막 패가 떠올랐다

전화를 걸까 숙박료를 낼까

숙박료를 낸다에 하트 퀸을 걸겠어

그가 내 앞에 섰다

전화를 써도 될까요

나는 상냥하게 웃으며 수화기를 들어 건넸다

난 또 졌구나 피식

하루가 가기 전에 도어벨이 급하게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슬쩍 눈을 마주치고 멋쩍지만 어쩔 수 없었던

그림자를 놔두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방을 치웠으나 무엇이 그를 일으켜 세웠는지 찾지 못했다

그가 버리고 간 것은 없었다

창을 열어 바람이 들어오도록 오래오래 놔두었다

가장 큰 패는 누구나 원한다

그래서 실패하기도 쉽다

하지만 여전히 가장 큰 패를 원한다

 

 



곽은영.jpg

1975년 광주 출생

1997년 전남대와 2001년 서울예술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2006동아일보신춘문예 당선

시집으로 검은 고양이 흰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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