뜰채 / 구광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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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628회 작성일 17-05-08 10:03본문
뜰채
구광렬
우럭회 小자 하나를 시킨다
고둥을 이쑤시개로 빼먹는데,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송선생에게 자릴 바꾸자한다
-왜 꼴 보기 싫은 놈 있어요?
-아니, 거울에 비치는 내가 꼴 보기 싫어서
수족관을 마주 보게 된다
멍게와 해삼쪼가리를 집어먹는데,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왜, 기분 안 좋은 일 있어요?
-아니, 난 기분 좋은 데
기분 좋지 않아 하는 놈이 있어서
광어는 바닥에 붙어 있어 눈이 마주치질 않는데
큰 눈알을 한 우럭과는 자꾸만 마주친다
둘의 시선, 가젤영양과 표범 간의 시선 같진 않다
반대일 것 같다
-한 잔 하시죠
-아니, 내가 따라줄게
소화가 안 된다
한 알, 한 알, 땅콩을 넘길 때마다 우럭의 눈치를 보게 된다
송선생은 배가 고픈지 얼굴도 들지 않고
성게 알, 소라, 오분자기, 해삼을 게걸스레 먹는다
-여기 오길 잘했죠? 쓰끼다시가 좋잖아요
-아니, 잘 못 왔어
아니, 잘 왔는데, 잘 못 앉은 것 같아
주인이 뜰채를 들고 올 때마다 한 마리씩 사라진다
하지만 우럭은 남아있다
표범의 저녁밥이 되리란 걸 알면서도
물가에서 목을 축이는 영양처럼
소주를 잔에다 부어 송선생에게 권하지도 않고 마셔버린다
-아유, 술이 부쩍 느셨네
인도양, 대서양, 태평양.
세상 모든 바다는 이어져있다
하지만 그의 바다는 끊겨져있다
그게 내 탓이라는 듯, 있는 힘을 다해 눈동자를 부라린다
-송선생, 다른 걸 먹으면 안 될까? 러시아산 왕게도 있는 것 같은데
-왜, 대게가 드시고 싶어요? 이미 준비하고 있을 텐데……
-아직 있잖아
-뭐가요?
-우럭
……
-뜰채가 지나갔나 봐요
1956년 대구 출생
멕시코 국립대학교(UNAM)에서 중남미문학을 공부
1986년 멕시코 문예지 《마침표 El Punto》에 작품을 발표하며 중남미문단에 등단
한국문단에서는 오월문학상 시 부문 대상 수상 및 현대문학에 작품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시작활동을 시작
한국어 시집으로 『슬프다 할 뻔했다』 『불맛』 등
『하늘보다 높은 땅』 (La tierra más alta que el cielo) 『팽팽한 줄 위를 걷기』(Caminar sobre la cuerda tirante) 등 다수의 스페인어 시집
UNAM 동인상, 멕시코 문협 특별상, 브라질 ALPAS XXI 라틴시인상 International 부문 수상
현재 울산대학교 스페인중남미학과 교수로 재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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