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곳의 옥상 / 구효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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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805회 작성일 17-05-08 10:07본문
먼 곳의 옥상
구효경
후루룩 꽃잎이 새처럼 날아가는 팔월
줄넘기를 하다가 담 넘기를 하는 기분이 들어
이 줄을 다 넘으면 저 너머엔 장미가 피어있을까.
체한 날 손을 땄을 때 흘러나온 피처럼 검붉은 정원이.
눈앞에 없는 울타리를 눈앞에 옮겨놓지
먼 곳의 정원에는 먼 곳의 정원사가.
먼 곳의 세탁소에는 먼 곳의 세탁사가.
나는 지금 여기가 거기보다 더 멀게 느껴진다.
먼 곳의 사람에겐 지금 여기 내가 멀게 느껴질 테지.
그렇지만 오늘은 모든 사람이 가까운 날.
그렇지만 내일은 다시 모두가 멀어지지.
지하실에서 피어나는 곰팡이와 애기 장미.
내가 밟는 골목길 개똥벌레 같은 가로등
흙과 먼지가 날리는 그곳이
쌔근쌔근 갓난아기 안고 잠든 누구에게
가까운 곳의 옥상이자, 먼 곳의 옥상이었을 테지.
체한 날 손을 땄을 때, 그 손 어루만져 줄 사람 없다고
슬퍼 말라고, 사람은 양 손을 갖고 태어났구나 싶었지.
줄넘기를 넘다가 하늘넘기를 하는 기분이 들어
저 파란 도배지 깔아놓은 천장을 뛰어넘으면
나의 옥상은 지구 위에.
얼마나 넓을까.
내 발은 얼마나 좁았을까.
가난한 오늘을 넘어가며
저 너머엔 손끝에서 피는 검붉은 장미를
화분에 심어놓는 사람이 살고 있을 거라고 믿지.
1987년 전남 화순 출생
2014년 《시인광장》 신인상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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