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오래된 가게 / 박승자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776회 작성일 17-05-12 09:31본문
작고 오래된 가게
박승자
입 안 가득 사탕이 녹지 않고 있었다
격자문에 유리로 된 엽서만한 창
눈을 바짝 대며
탁자 옆, 물건을 가져간 사람이 기록하는 외상장부가
건들건들 검은 고무줄에 묶여 있었다
엄마 콩나물죽도 맛있어요
까만 밤 같은 간장으로 질퍽한 하얀 날을 쓱쓱 비벼 먹으며 거뜬히 술래잡기도 깡통차기도 할 수 있는 걸요
속눈썹처럼 휘어지는 강을 안고 잠들어 있는 엄마를 폴짝 넘어
괘종시계 소리를 따라 들어가며 잡목림은 숨바꼭질하기 좋은 곳
가지가 맨살에 스쳐 상처투성이여도 괘종시계 안은 없는 것 빼고 다 있어요
자주 술래여서 동무들은 헐거운 나무문 안쪽에 연탄광에 꽁꽁 숨어 있어요
밤, 강이 얼며 선반 위 사이다병 터지는 소리가 폭죽 소리처럼 들려요
민물새우가 되었다 붕어가 되었다 하는 겨울달이
보내 준 엽서만한 유리창이
눈썹 위에 올려 있어 무거운 눈을 자주 비벼요
몇 개의 이가 썩어도 사탕은
입 안에 가득해서
야야,
극장 끝났냐 하는 소리가
뒷골목 건달 같은 외상장부를 툭 건드리고
함석문 닫는 소리
점빵 노란달 스위치를 내리고
그래도 그때 먹는 콩나물 멀건 죽이 얼마나 맛있는지 지금도
입 안 가득
하얗고 둥근 십 리 사탕이 녹지 않고 있었다
2000년 〈광주일보〉 신춘문예 당선
2011년 《시안》 신인상 당선
시집 『곡두』 등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