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가 / 하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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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911회 작성일 17-05-25 09:08본문
귀가
하 린
골이 심하게 패인 집과 집 사이를 걷는다
우거진 적막을 사람들은 골목이라 부른다
지금은 골목의 내면을 연출하기 좋은 때
적당한 지점에서 술 취한 당신이 나타난다
뒷축이 한쪽으로만 닳아진 구두 소리가 들린다
집에 가까워진다는 것은
삐걱거리는 철문의 녹슨 질문과
형광등 뒷목에 얹어진 먼지의 대답과
우울에 대한 침대의 소견을 듣는 일
당신은 여전히 당신이 만든 골목과 계약 중이니
귀가가 늦는 당신을 위해 어둠은 폐활량을 키운다
스위치를 올리는 순간
후다닥 뛰쳐나갈 고독이란 짐승을 빈방이 사육하고 있다
당신은 방의 우울한 목젖을 보기 위해 귀가한다
삭아 내린 담벼락 위 깨진 유리 사이에서
푸른곰팡이가 꽃을 밀어올리고 있다
달을 향해 날린 포자는 어느 별을 향해 가고 있는걸까
당신이 사라진 자리에선 여전히 집이라는 온기가 발견된다
1971년 전남 영광 출생
중앙대 대학원 문예창작과 졸업(박사)
2008년 《시인세계》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야구공을 던지는 몇 가지 방식』 『서민생존헌장』
연구서 『정진규 산문시 연구』와 시창작안내서 『시클』 등
2011년 청마문학상 신인상, 2015년 송수권시문학상 우수상
2016년 한국해양문학상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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