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이 지나가는 흔적 / 박현솔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957회 작성일 17-06-22 10:00본문
우리들이 지나가는 흔적
박현솔
지나온 흔적을 지우는 태양의 저편,
희미해진 감각을 더듬으며 긴 줄을 따라가고 있다
큰 나무 앞을 지나서 모랫길을 돌아 벼랑으로 이어지는
끄트머리에서 앞서가던 것들이 줄줄이 사라진다
안개가 짙게 낀 것도 아니고, 어둠이 완성된 것도 아니다
길은 절벽을 타고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지고
매복한 어둠은 짙은 적막이 될 때까지
낮은 포복을 유지하며 태양의 뒤편으로 흩어지고 있다
풀려가는 동공과 삐걱거리는 다리 사이로
사냥한 것들 중 가장 가벼운 것부터 떨어뜨리면
부스러기는 우리들이 지나가는 흔적이 된다
시간은 죽은 태양의 저편에서 온 것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운석이 떨어진 곳
길이 끊기고 나무들이 불에 타고
가벼운 지붕들은 흙무더기가 되어 주저앉는다
대지의 상처들이 성이 나서 곪아터지고
들판을 잃은 메뚜기들은 절벽을 향해 날아오른다
그렇게 절벽은 살아있는 것들이 마지막으로 향하는 곳
길을 내려는 것들이 어둠 속으로 들어온다
빈 몸으로 난간을 걸어 까마득한 어둠의 중심을 바라볼 때
밭 딛고 선 곳이 지금 가야 할 길임을 알게 된다
길이 어둠을 이끌고, 어둠은 길이 되어 나아간다
어둠은 쌓이고 쌓여서 전보다 더 무거워진다
제주 출생
아주대대학원 국문학과 졸업(문학박사)
1999년<한라일보>신춘문예와 2001년《현대시》신인상을 통해 등단
시집『달의 영토』 『해바라기 신화』
저서『한국 현대시의 극적 특성』등
2005년과 2008년 한국문예진흥기금 수혜
경기시인상 수상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