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화첩 / 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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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457회 작성일 17-07-04 09:26본문
그 화첩(畵帖)
박수현
막내숙모가 세상을 떴다 삼오제 때 선산 솔진에서 숙부 옆에 누운 숙모를 만났다
말년에 아들 둘 먼저 보내고 읍내의 좁아터진 PC방도 남의 손에 넘겼다 떼도 올리지
못한 봉분 앞에서 나는 숙부의 탄탄한 엉덩이를, 숙모의 산벚꽃 젖꽃판을 떠올렸다
겨우 초경을 치른 나를 속절없이 깨운 단칸방의 그 밤 비릿한 파열음을 몰고 서로를
구겨 넣던 아득한 사태(事態) 나는 도도록이 솟은 젖가슴을 부여안고 마른침을 삼켰다
남은 옷가지를 태웠다 솔밭 등성이 따라 산벚꽃이 바람에 날렸다 바람결 따라 바꾸며
벌어지는 맨살과 맨몸의 저 체위! 십년 만에 깃든 봉분 속도 저렇게 난실난실 꽃잎 날아
오를까 한참 머리를 맞대던 사촌 동생들이 툭툭, 손을 털며 일어섰다 조경업자 염씨가
산소를 에워싼 아름드리 소나무 몇 그루를 육천만원에 사겠다고 했단다 대책 없이
눈부신 볕살, 산벚꽃 흥건히 날리는 그 화첩
-《시와 소금》 2017년 여름호
2003년 《시안》으로 등단
시집 『운문호 붕어찜』 『복사뼈를 만지다』
공저 시집 『관계에 대한 여덟가지 오해』『티베트의 초승달』『밍글라바 미얀마』 등
2011년 서울문화재단 창작기금 수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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