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를 사별한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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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를 사별한 사나이
노장로 최홍종
콧속에는 달짝지근한 흥 노래가 술 익는 냄새에
장단을 맞추며 중국집 늙은 총각의 철가방 속에서
거짓말처럼 풍겨 나오고 저주하며 흉보며
때 국이 주르르한 소주잔에서 슬퍼하며
승객 떠난 쓸쓸한 간이역에서 낡은 캡 모자를
벗었다 쓰다 손시늉을 하며 이상한 승객들이 장례행렬을 따라간다.
동네를 거의 다 온 전봇대가 알은 채하니
후줄근한 단벌 양복을 전신주에다 얌전히 다독이며 걸고
동네어귀 담벼락에다 먼저 손사래 치며 신고하고
그림자를 잘 수거하여 잘 눕혀 모셔두고
혹시나 지나가는 행인이 눈치라도 챌까
마지막 이별은 영민하길
어제 한낮에 몰래 미리 준비한 하얀 장갑을 끼고
갑자기 부동자세를 취하고 혼미한 술기운을 가다듬으며
삐딱하게 눌러쓴 모자에 거수경례를 붙이며
이젠 더 이상 처럼도 비유도 은유도 메타포도
헝겊조각을 맞추어 골무를 지을 필요가 없다.
자유다 그림자를 영원히 잘 배웅했으니....
2025 6/8 시 마을 문학가산책 시인의향기란에 올려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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