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네내의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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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네내의 가을
ㅡ 이 원 문 ㅡ
절기에 넣고 뿌린 씨앗
그렇게 더웠었나
한여름 춥네 덥네
비 많이와 걱정 가물어 걱정
부채 내려놓으니 이렇게 잠깐인 것을
뜸북이 뻐꾹새 떠난지 며칠 됐나
추석에 에미 보고 간 아이들 보고 싶구나
늙어보니 사람이 그립고 산 설고 물 설구나
잠 안 오는 긴긴 밤 누가 나를 찾을까
아이들 생각 하니 미안하기만 하고
못 가르친 글 공부에 죄가 되는구나
높은 핵교(학교) 문턱에 가고 싶다는 아이들
핵교(학교) 대신 공장으로 남의 집 밥떼기로
저희들이 벌어 시집 가겠다는 아이들이었는데
공장 다니며 연애질 한다 이웃들의 흉이 얼마나 많았나
있다고 무시하며 모여 짓거렸던 사람들
지금은 처지가 바뀌어 자기네 자식들이 어떻게 됐나
인생이란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인데
그렇게 몰아 세워 흉들을 보았는지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 그저 죄가 되는구나
뒤척이는 밤 잠깐의 단몽에 에미 찾는 아이들
내일은 꿈적거려 텃밭에 나가 고추 잎 좀 따고
들깨 털어 기름 짜놓았으니 한 병씩 돌릴까
뭐하고 밥 먹나 삮힌 고추 좀 나누어 담아야겠구나
쌀 말은 무거우니 내려 오면 들려주고
참 고추가루 빻아놓았으니 어디에 담을까
떨어진 동부 이삭 고추대에 매달린 고추 끝무리들
모두 이 소쿠리에 담았으니 올 한 세월도 끝나나
곱던 단풍도 눈에 안 들어 오고 쓸쓸하기만 하구나
이 밭 오르내리며 텃밭 가꾸며 보낸 세월
내가 먹어야 뭘 얼마나 먹겠나
아이들 생각에 더 심고 많이 뿌렸는데
가방 대신 공장 변또(도시락) 옷 못 사입혀 밥떼기로
아이들아 너희들이 무엇을 원망하였겠니
이제 다 잃어버리려므나 에미가 잘못했다
그 흉도 흉이 아니고 너희들이 찾아야 할 운명이었어
오늘도 저문 하루 늦가을 저녁이 저물면 이렇게 쓸쓸한거냐
불어 오는 바람까지 이 산 단풍 터는구나
댓글목록
백원기님의 댓글

겨울을 앞둔 가을 끝자락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오색단풍 물든 자연과 딸과의 정겨운 엄마의 대화가 마음 따뜻하기만 합니다.
박인걸님의 댓글

아팠던 시절의 이야기를 시로 풀어내셨군요.
그 시절에는 그런 아픔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희생이 오늘의 우리 나라를 만들었지요.
장문의 시를 쓰시느라 애쓰셨습닌다.
향필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