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전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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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전나비
이영균
어제는 백석 시인이 사랑한 여인을 만났다
나타샤, 아니 자야란 애칭이 잘 어울리던 기녀 길상화(김영한) 이다
식당에 한 학생이 찾아와 옛 남자의 소식을 전한다
“미안했답니다. 전해드릴 게 있다는데 함께 가주시겠습니까?”
20년이 지나서야 시한부가 된 남자의 소식을 전해 들은 여자
망설이다 따라나선 길은 왠지 허둥스러워서 새 옷을 사 입는다
급한 마음만큼이나 기차도 촉박하게 도착한다
숨이 턱에 차 남자를 다시 본다는 격함만큼
심장이 말라붙을 듯 조여든다
가까스로 병원에 도착했을 때 학생은 남자를 아버지라 부르며
눈짓으로 여자를 병상으로 인도한다
파도 같은 번민 속에서 반평생을 뒤돌아와
환자인 남자의 손을 부여잡는 여자
백석을 사랑해서 길상사란 사찰을 짓도록
전 재산을 바친 자야가 거기 있었다
서울에서 춘천까지 무작정 따라나선 길
왠지, 무얼 어떻게 하자는 건지
그런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필요치 않았다
단지 생을 끝내기 전에 한번은 만나 봐야겠다는 막연함 그뿐이었다
돌아오는 길은 오래된 변비를 다 쏟아낸 것처럼 후련했는데
무언가 허전한 것도 같고
아직도 무언가 남아있어 끈이 달린 듯 찜찜했다
그리움은 비운다고 비워지는 게 아니다
내일이면 또 그리움은 허기를 채우려 무언가를 또 먹어 치울 것이다
온종일 그때로 돌아가 그 남자를 만나거나
지금의 여자를 씻어내는 날을 반복할 것이다
백석의 자야가 한평생을 속절없이 허물어져 간 것처럼
* 부전나비의 의미; 흔한 듯 하나뿐인 독특한 개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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