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의 본분 / 조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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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의 본분
조경희
발은 걸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자유를 느꼈다
발바닥이 지면과 맞닿아
땅을 딛고 서 있을 때
발은 발다웠다
걸어야 한다는 의욕에 불타올랐다
깁스에 결박당해 있던 지난 며칠 동안
발은 발이기 보다는 한낱 석고에 지나지 않았다
걷는 일이야 말로 발의 본분이며 진보이고
또한 최소한의 도리이며 사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깁스를 풀고 오른쪽 발을 바닥에 내딛는 순간
묵직한 지면이 발바닥을 자극하며
발에 힘이 실렸다
중력을 받들어
꾸욱, 바닥에 바닥을 포갰을 때
지구를 들어올리는 힘의 중심이 되었다 발은,
멈췄던 길을 다시 부른다
눈 앞에 지도가 펼쳐지듯 걸어서 가야 할 길들이 어서오라 그의 발을 끌어당긴다
왼발, 오른발, 왼
발은 가보고 싶은 곳이 많았지만
아무리 가고 싶어도
가지 말아야 할 곳이 있다는 것도
발바닥에 지문처럼 새겨두었다
새들이 먼 하늘을 날 때 희열을 느끼듯
발은 먼 길을 여행하고 미지의 세계를 탐험할 때 걸음이 가벼웠다
2017 시사사 5-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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